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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30, 2020

과학보다 이념을 앞세웠던 '투사'의 전향기 - 연합뉴스

tamonaa.blogspot.com

마크 라이너스 '과학의 씨앗'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세계 어느 곳이든 사회운동가들 가운데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신념이 너무 강해 이에 어긋나면 어떤 논리적, 과학적 근거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의 과학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마크 라이너스(47)도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라이너스는 20대 초반에 환경보호 운동을 벌이다 그린피스 활동가 짐 토머스의 권유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유전적으로 변형된 생명체) 반대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동료들과의 토론과 그린피스 전단 등을 통해 유전공학의 위험과 관련 기업의 사악한 의도에 눈을 뜬 그는 이를 막는 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 법의 테두리를 과감히 넘어서는 활동을 전개한다. 비밀리에 동원된 동료들과 함께 한밤중에 농장에 침입해 GM 옥수수를 베어버리는가 하면 GM 농산물 업체 몬산토의 영국 본부 점거 시위를 벌였다.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인류 역사상 최초의 복제 동물 돌리를 훔치거나 생식에 대한 인위적 위협을 알리기 위해 광장에서 집단 성행위를 벌이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투사'로서 경력이 쌓이고 이름이 알려지는 동안에도 문득 '이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회의에 빠졌던 라이너스는 2001년 옥스퍼드의 한 강연 행사에서 기후변화에 회의적인 입장이던 덴마크의 통계학자 비외른 롬보르의 얼굴에 케이크를 투척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신념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다. 뒤늦게 그 일을 사과하자 의외로 신사적이고 상냥하게 대하는 롬보르를 보면서 온갖 자료와 통계로 가득한 그의 책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뭔가 근거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세계가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바로 '과학의 세계'다.

환경운동 단체의 GMO 반대운동
환경운동 단체의 GMO 반대운동

[EPA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그 세계는 새로운 과학적 근거가 드러나면 신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를 이끌었고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다. 라이너스가 2018년 영국에서 출간한 '과학의 씨앗(원제 Seeds of Science·스누북스)'은 이 같은 '전향'의 과정의 함께 GMO에 관한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호도됨으로써 인류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꽤 오랜 고민과 학습 끝에 GMO가 위험하고 인류의 미래와 지구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만으로도 환경운동에서 추방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고 동지들과도 등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았지만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2013년 1월 옥스퍼드 농업학회에서 수백 명의 농업인, 정치인, 기자 등을 앞에 두고 저자는 '전향 선언'을 한다. "지난 수년에 걸쳐 GM 작물들을 파괴해온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드립니다. 또한 1990년대 중반 GMO 반대운동의 출발에 협조하고 환경보존에 이용될 중대한 기술을 악마화하는 데 일조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환경운동가로서 그리고 누구나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 이에 반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연설한 지 몇 달 후 저자는 아프리카를 찾아 GM 작물이 이 지역의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봤고 그것이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운동가들과 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지 정치인, 언론에 의해 가로막히는 현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바이러스에 내성을 지닌 식량작물 카사바, 가뭄에 잘 견디는 옥수수,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난 바나나 등은 다른 어느 곳보다 아프리카에서 절실히 필요한 GM 농산물이었지만 아이와 임산부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지경인데도 GM 농산물의 경작은커녕 실험용 재배조차 사실상 금지돼 있었다.

여기에는 반대운동 단체의 악선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간다의 한 의원은 "한 과학자와 활동가가 무슬림인 지역구 주민들에게 '돼지 유전자를 옥수수에 넣어서 옥수수를 살찌게 할 것'이라면서 선동했다"고 전했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무슬림 주민들이 이 말을 받아들인다면 GMO에 우호적인 이 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떨어질 것이 뻔했다. 이밖에 아프리카에서는 'GM 옥수수를 먹으면 다음 세대에 성적 결함이 생겨서 태어난 아이들이 동성애 경향을 보인다'라거나 'GM 옥수를 먹으면 옥수수 머리가 달린 아이를 낳게 된다'는 것과 같은 잘못된 정보가 난무했다. 'GMO는 암과 불임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광고가 방송을 타기도 했다. 물론 이 주장의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물을 길어 나르는 아프리카 소녀들
물을 길어 나르는 아프리카 소녀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자는 이런 실태를 몸소 체험하고 GMO 옹호자로 완전히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유전공학의 발전 과정과 그 성과 및 한계, GMO 반대운동의 역사와 그 주역, 그들의 목적과 자금원 등을 상세히 기술한다. 그는 유전자 조합이란 '신의 영역'에 인간이 도전해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이래 계속해온 종자 개량이 곧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이며 자연에서도 바이러스와 식물이 유전자를 교환하는 일이 일어난다.

유전자공학이 걸음마 단계였던 1970년대에는 이것이 지닌 잠재적 위험성에 관해 확신할 수 없었던 과학자들도 자발적으로 재조합 DNA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으나 이후 연구 성과들이 축적되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안전에 관한 공감대가 확산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선동에 익숙한 제러미 리프킨 같은 운동가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리프킨은 "과학자들이 10년 안에 당신의 복제인간을 만들 것이고 성에 의한 정상적인 생식은 50년 안에 인공생식으로 완전히 대체될 뿐만 아니라 유전공학으로 변형된 인간이 소처럼 풀을 먹고 식물처럼 피부로 광합성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이 보기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지만 문제는 이런 주장이 먹힌다는 점이다.

이런 반대운동 단체들은 언론과 정치권의 지지를 받고 매년 수십억 달러의 지원자금을 확보해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이들의 소송과 규제 입법을 위한 로비 활동으로 기업들은 모든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큰 수익이 기대되지 않는 한 GM 작물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할 지경이 됐다. 따라서 대기업의 이익 독점을 GMO 반대의 한 이유로 내세운 반대 단체들 때문에 GMO 분야의 독과점은 더욱 심화하는 역설이 연출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GMO가 지구 환경과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이념이 아니라 과학적, 실증적 자료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펴는 주된 논지다. 그러면서 150편의 논문 결과를 종합한 2014년의 메타분석에 근거해 다음과 같은 통계를 제시한다. GM 기술의 도입으로 전 세계에서 농약 소비가 37% 감소했고, 작물 생산은 22% 증가했으며 농부들의 수익은 68% 증가했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GM 작물 도입에 따른 토양의 탄소저장 개선 효과로 201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2천60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효과를 거뒀다. 자동차 1천200만대를 도로에서 제거한 것과 같은 효과에 해당한다.

그와 반대로 GMO 반대운동 단체들이 전면적인 승리를 거둬 미국에서 모든 GMO를 제거한다면 옥수는 11%, 목화는 18%, 콩은 5% 생산량이 감소한다. 이 손실을 비GM 작물로 메우려면 110만㏊(110억㎡)의 추가 농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환경단체들이 주장하는 '전통적 유기농법'을 고수한다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은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물을 길어 날라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끝맺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현명하게 사용했다면 전 지구적인 빈곤퇴치는 물론 좀 더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 수도 있는 종자 육종 기술 하나를 두고 싸우느라 우리는 이미 20년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앞으로 20년을 더 허비하지는 맙시다."

조형택 옮김. 412쪽. 2만2천원.

과학보다 이념을 앞세웠던 '투사'의 전향기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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