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를 삼을 만한 스승이 있다는 건 특별한 축복이다. 지난 5일 별세한 이효재 선생의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여성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 이효재 선생은 탁월한 업적뿐 아니라 따뜻하고 깊은 사랑으로 기억되는 스승이었다.
1980년대 초 해직 교수 시절에 이효재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성함만 듣던 유명한 교수님을 대면했을 때 보통 할머니같이 푸근한 인상이셨다. 정확히 말하면 서양 할아버지 같다고 해야 할까? 평범한 작은 아파트에서 지금은 양녀가 된 벗이자 가족인 희경씨와 함께 살고 계셨다. 그때 나는 이화여대의 전설적인 투사인 사회학과 ‘언니’들을 따라 갔었다. 지금 서울 시의원인 최정순, 한의사인 고은광순 선배들이었다.
다음 만남은 해직이 풀리고 교수로 복직해서였다. 여성학과 대학원에서 여성사, 가족사회학 과목을 맡은 이효재 선생의 강의는 늘 도전적이고 열정적이었다. 여성사 수업에서 조선조의 열녀비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음을 강조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가족연구에도 기성사회학계가 가족을 ‘자연현상’으로 보는 것과 달리 가족은 한 시대의 사회구조적 산물임을 강조했다. 제자들이 공부 열심히 하고 나서 가부장적인 결혼제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한 제자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들고 인사드리러 갔다가, ‘결혼을 축하할 수는 없다’고 진지한 코멘트를 들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사회와 단절된 이기적인 가족구조의 대안을 찾으려 했던 이효재 선생은 이스라엘의 키부츠나 스페인의 몬두라곤 협동조합 사례연구에 힘을 쏟았다. 지역에서도 기적의 도서관, 생활협동조합, 상담기관 등을 지원하면서 새로운 공동체의 기반을 닦았다.
October 08, 2020 at 04: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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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재 정신, 그 향기 널리 흩날리다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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