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수요향기·이미경 >재난지원금, 추억을 소환하다
이미경-광주시동구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
By 편집에디터
게재 2020-06-16 13:57:25
필자 엄마에게 남광주시장은 삶의 현장이었다. 이른 새벽기차를 타고 신선한 야채와 해산물을 팔러 오던 시골 아낙네들과 조금이라도 좋은 물건을 싸게 사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었다. 엄마는 하루에 두 번 남광주시장에 다니셨는데 새벽기차와 함께 온 할머니들의 야채는 항상 10명이 넘는 우리가족들에게 건강을 선사해줬다. 시골에서 유학 온 사촌오빠들까지 한참 먹어대는 나이의 아이들을 위해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남광주시장의 새벽시장은 없어서는 안 될 곳이었다. 저녁 무렵 또 한 차례 시장에 가서 떨이로 싸게 파는 야채를 머리에 이고 양손 가득 사가지고 휘청거리는 허리로 달려 다니셨다. 달려다닌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만큼 엄마는 걸음도 빠르고 날쌨다. 어린 시절 필자는 엄마와 순을 잡고 시장에 따라가는 것을 좋아했다.
남광주시장은 어린 눈에 별천지 같았다. 없는 것이 없고 사람도 많고 만나는 사람마다 정겨운 인사를 건네면서 인정이 넘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졌다. 자주 마주치는 주인들은 한 움큼씩 장바구니에 야채를 넣어주면서 밑지고 장사한다는 이야기를 서슴치 않고 했다. 시골에서 야채를 가지고 올라온 할머니들은 양은 도시락에 찬밥을 물에 말아 김치를 얻어 훌훌 마시면서도 힘든 내색도 없이 시장바닥 한켠을 지켰다. 그렇게 치열하게 일해서 자식들을 키워냈으리라. 돌아갈 기차시간이 다가오면 시들해진 야채를 앞에 두고 마음을 졸이는 모습이 보였다. 난장에 두고 파는 야채는 더 볼품이 없어지고 있지만 농약 덜하고 잘 키웠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난 늘 엄마에게 할머니들의 물건을 살 것을 종용했다.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힘든 농사에 갈라진 손등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남광주역이 없어지고 더 이상 새벽기차와 함께 오는 야채는 볼 수 가 없었다. 이후로 가끔 아주 가끔 남광주시장의 문화가 탈바꿈하는 것을 조금은 아쉬워하면서 시장에 갔지만 여전히 시장은 보물 같은 곳이었다.
아버지제사를 앞두고 엄마와 함께 재난지원금이 들어있는 카드를 가지고 시장에 갔다. 일요일 아침이라서 비교적 한산했지만 광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늘을 트럭 한가득 싫어 놓고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여사장님은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고 어린 시절을 연상케 했다.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지 목소리는 쉬었지만 시커먼 얼굴이 건강하게 보였다. 병어철이라서 통크게 10마리를 사고 야채전, 생선전등을 기웃거리는데 조그만 곳에서도 재난지원카드와 상생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팻말에 놀라웠다. 바뀐 문화도 알지 못하고 찾아온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평소 같았으면 몇 번을 들었다 놨다 망설일 텐데 든든한 지원금이 들어있는 카드가 이것저것 안심하고 득템하게 해주었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붙잡고 작은 눈동자를 휘둥굴리던 소녀는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언제까지나 날아다닐 것 같았던 엄마는 조금만 걸어도 힘에 부치는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세월의 무심함에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의 시장 나들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다.
남광주시장에서 행복한 추억을 소환하고 돌아오는길에 주유소에 들러 기름도 가득 주유하고 돌아왔다. 국가 재난 상황에 모든 국민에게 주어진 재난지원금은 어떤 이에게는 생명수가 되었고 또 어떤 이에게는 남을 위해 기부하는 행복의 마중물이 됐다. 2020년 우리 모두는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시장의 난장에서도 카드가 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주었고 마스크사용과 손씻기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평소에 지나쳤던 사소한 일상의 행복도 뼈져리게 알게 되었다.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지명을 받아 의료진을 위한 '덕분에'첼린지에 동참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뜻을 새기면서 촬영을 하는데 가슴 깊숙한 곳에서 감사함이 몰려왔다. 아직도 수도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불안하게 하지만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더 조심하고 살피면 머지않아 코로나 종식의 소식이 들려올 것을 믿는다. 훗날 이 모든 것들이 한편의 추억으로 기억될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June 16, 2020 at 11:5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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